두 번째 집중이슈 · 민주당·성평등·피해자안전
젠더갈등에 대한 민주당의 딜레마
용혜인 지명과 동시에 되살아난 ‘페미니즘 정치’
용혜인 지명 직후 보수·개혁보수 진영의 반응은 매우 거칠었다. 이준석 전 대표는 ‘꼴페미 겨우 정리했더니 그걸 왜 또 건드리는가’라고 했고,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용 후보자가 ‘혐오와 분열을 자양분 삼아 정치를 해왔다’며 이번 인사를 정권의 ‘자폭 카드’라고 공격했다.
이것은 단순한 장관 후보자 적격성 논쟁과는 다르다. 보수·개혁보수 진영이 용혜인을 2030 남성에게 거부감이 큰 페미니즘 정치의 상징적 인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편에서는 장관 후보자의 정책과 능력을 검증하기도 전에 자극적인 표현부터 등장한 것은 보수 정치권이 다시 반페미니즘을 이용해 젊은 남성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결집시키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한쪽에서는 ‘다시 페미니즘 정치가 시작된다’고 경고하고 다른 쪽에서는 ‘다시 반페미니즘 정치가 시작된다’고 비판한다. 용혜인은 그 충돌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그런데 2030 여성도 마냥 반기는 것은 아니다
용혜인에 대한 비판이 보수진영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의당 양경규 대표는 용 후보자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환영했던 점을 지적하며 피해자들의 우려에도 이를 환영했던 인사가 여성과 소수자, 피해자의 권리를 책임질 적임자인지 물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과 일부 여성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페미니즘 자체가 아니라 여성의 안전 문제다.
성폭력·스토킹·가정폭력·교제폭력 사건에서 경찰의 초기 수사가 부실할 경우 이를 누가 다시 들여다볼 것인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없앤다면 피해자를 보호할 대체장치는 충분한가.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별개로 여성과 범죄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민주당의 딜레마—남성도, 여성도 놓칠 수 있다
흔히 민주당의 문제를 ‘2030 남성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2030 여성의 지지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니다.
검찰개혁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추진하면서 성폭력·스토킹·교제폭력 등에서 수사기관의 잘못된 판단을 다시 검증할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젊은 여성에게 ‘검찰개혁도 중요하지만 내 안전은 누가 지켜주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민주당은 남성에게는 ‘지나치게 페미니즘적인 정당’이라고 비판받고, 여성에게는 ‘정작 필요할 때 여성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용혜인이라는 젊은 여성 정치인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만으로 2030 여성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상징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다.
국민의힘의 딜레마—‘이대남 정치’ 이후가 있는가
보수진영은 병역과 채용 공정성, 여성할당제와 여성가족부 문제를 통해 2030 남성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흡수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용혜인 지명에 대한 강한 공격 역시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청년 남성의 불공정을 대변하는 것과 반페미니즘을 정치적 정체성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후자로 갈수록 젊은 남성 일부는 결집할 수 있지만 젊은 여성과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여성의 안전과 경력단절, 돌봄 부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페미니즘만 공격한다면 국민의힘 역시 젠더정치의 한쪽 진영에 갇힌다. 민주당이 ‘여성의 정당’, 국민의힘이 ‘남성의 정당’으로 인식되는 순간 양당 모두 상대 성별의 젊은 유권자를 장기적으로 잃을 수 있다.
비례대표 의원직 유지 논란도 정책 신뢰의 문제다
용 후보자는 장관이 되더라도 비례대표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적으로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지만, 비례대표가 입각할 때 사퇴해 다음 순번이 승계하도록 해온 관례와 위성정당 정치의 책임을 둘러싸고 국민의힘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용 후보자는 자신이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이 되는 소수정당의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성평등 정책의 신뢰를 얻으려면 법적으로 가능한가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용하는 정치적 책임의 기준도 설명해야 한다.
이 논쟁은 젠더갈등과 별개로 보일 수 있지만, 상징적 인사만으로 성평등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연결된다. 정책과 능력, 절차와 책임을 모두 납득시켜야 한다.
용혜인에게 주어진 진짜 시험대
용혜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페미니즘을 강화할 것인가, 후퇴시킬 것인가가 아니다. 여성에게는 성폭력과 스토킹, 노동시장 차별과 경력단절, 돌봄 부담에 대해 ‘당신이 실제로 겪는 불안과 불평등을 해결하겠다’고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젊은 남성에게는 병역과 취업, 주거와 공정의 문제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불공정 역시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성평등가족부를 ‘여성을 지원하는 부처’가 아니라 ‘성별 때문에 누구도 부당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부처’로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용혜인 지명은 2030 젠더 갈등을 다시 폭발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ISSUE길의 판단—서로 다른 불공정을 하나의 ‘공정’으로 묶을 수 있는가
여성이 경험하는 경력단절과 돌봄 부담, 성폭력과 안전 문제를 ‘이제 법적으로 남녀는 평등하다’는 말로 지울 수 없다. 동시에 군복무를 하고 극심한 취업과 주거 경쟁에 놓인 젊은 남성에게 과거 남성 중심 사회의 책임을 개인적으로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2030 남녀가 직면한 문제에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 일자리 부족, 높은 주거비, 계층이동의 어려움, 결혼과 출산의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용혜인이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가 핵심은 아니다. 여성의 현실적인 불평등과 안전 문제를 해결하면서 젊은 남성이 느끼는 병역과 공정의 문제까지 성평등 정책 안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결국 2030 젠더 갈등의 미래는 남성과 여성 가운데 어느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느냐가 아니라 서로 다른 불공정의 경험을 하나의 사회적 공정으로 다시 묶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실패한다면 지금의 젠더 갈등은 지역·이념·세대에 이어 한국 정치를 장기간 갈라놓는 새로운 정치균열로 굳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