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집중이슈 · 기후대응·산업경쟁·에너지안보
재난은 커지는데 세계의 기후대응은 왜 흔들리나
기술은 앞으로 가는데 정치는 흔들린다
기후위기에 대한 세계의 대응이 멈춘 것은 아니다.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투자는 빠르게 늘고 있고 각국은 탄소중립 목표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온실가스 감축 속도는 목표에 크게 못 미친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후규제를 늦추거나 완화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술은 앞으로 가는데 정치는 흔들리는 것. 지금 세계 기후대응의 가장 큰 모순이다.
세계는 움직였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세계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석탄 감축, 전기차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추진해왔다.
실제로 태양광·풍력·배터리 투자는 급증했고 청정에너지 산업은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세계의 에너지 소비 자체도 계속 늘면서 석유·가스·석탄 사용은 쉽게 줄지 않고 있다.
현재 각국 정책이 그대로 이어질 경우 금세기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2.8℃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이 현재 약속한 감축목표를 모두 이행해도 2.3~2.5℃ 수준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세계의 에너지 수요와 탄소배출 구조가 더 완강한 것이다.
왜 기후정책은 흔들리는가
가장 큰 이유는 기후대응이 본격적으로 경제와 생활의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탄소세를 올리고, 내연기관차를 줄이고, 산업설비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려면 당장 비용이 든다.
효과는 수십 년 뒤 나타나는 반면, 전기료·자동차 가격·기업 부담은 지금 발생한다.
경기가 어렵고 물가가 오를수록 유권자들은 자연스럽게 기후보다 생활비와 일자리를 먼저 보게 된다.
결국 기후정책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의 정치경제 문제가 되고 있다.
전쟁과 산업경쟁도 기후보다 앞선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불안은 각국에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줬다.
탄소감축도 중요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다.
그래서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면 일부 국가는 석탄과 가스 사용을 다시 늘리고, 원전 수명을 연장하거나 화석연료 공급망 확보에 나선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첨단산업 경쟁까지 겹쳤다.
유럽에서도 기후규제가 지나치게 강하면 기업의 생산비가 높아져 미국·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후정책의 질문이 ‘얼마나 빨리 탄소를 줄일 것인가’에서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면서 어떻게 줄일 것인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후퇴, 흔들리는 국제공조
미국의 파리기후협정 재탈퇴도 세계 기후정책에 큰 부담이다.
문제는 미국 한 나라의 배출량에 그치지 않는다.
한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탄소를 줄이는 동안 다른 국가는 규제를 느슨하게 하고 값싼 화석연료를 사용하면 산업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그러면 다른 국가에서도 ‘미국도 하지 않는데 왜 우리만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기후위기가 전형적인 집단행동의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다.
네팔 같은 개발도상국은 기후재난에 특히 취약하지만 동시에 도로·전력·병원·학교 같은 기본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선진국이 이들에게 석탄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와 재난대응시설을 만들라고 요구한다면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선진국이 더 크지만 실제 피해는 대응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이 더 크게 입는 경우가 많다.
국제사회의 기후재원이 크게 부족한 이유 때문에 기후위기는 환경문제를 넘어 국가 간 불평등의 문제가 되고 있다.
첫째, 기후정책을 산업정책으로 바꿔야 한다
해법은 단순히 ‘탄소중립을 더 강하게 추진하자’가 아니다.
탄소감축이 경제의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구조가 돼야 한다.
재생에너지·원전·전력망·배터리·전기차·에너지효율 산업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전환 비용을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
탄소세와 에너지 가격 상승의 부담이 저소득층과 특정 산업·지역에 집중되면 기후정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저소득층 지원, 산업전환 지역 지원, 노동자 재교육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구호가 아니라 기후정책을 지속시키기 위한 조건이다.
셋째, 감축과 함께 적응에 투자해야 한다
온난화의 상당 부분은 이미 현실이 됐다.
제방과 배수시설, 전력망, 산불 대응, 폭염대피시설, 농업용수, 조기경보체계 등 달라진 기후를 견딜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만드는 투자가 필요하다.
넷째, 국제적 비용분담 구조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 감축 목표만 요구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저금리 장기금융과 국제개발은행 지원, 부채 부담 완화, 기후재난 복구기금 등을 통해 가난한 국가들도 실제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ISSUE길의 판단
세계가 기후위기를 몰라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광도, 풍력도, 원전도, 배터리도 있다. 필요한 기술의 상당 부분은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일자리를 잃는 사람을 누가 보호할 것인가, 에너지 가격과 산업경쟁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기후위기의 병목은 점점 과학과 기술에서 정치와 경제로 이동하고 있다.
기후정책이 지속되려면 ‘옳은 정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고, 산업과 일자리를 함께 지킬 수 있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