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3 · 교육·읽기·문해력
읽지 않는 아이들, 한국 교육의 미래는 괜찮은가
상위권은 줄고 하위권은 늘었다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에 경고등이 켜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인 PISA 2025에서 한국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평균점수는 501점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높지만 2022년 515점과 비교하면 3년 사이 14점 하락했다.
평균점수만 떨어진 것이 아니다. 높은 수준의 읽기 능력을 갖춘 상위권 학생 비율은 13.3%에서 10.3%로 감소했다. 반면 기본적인 읽기 능력이 부족한 하위권 학생 비율은 14.7%에서 17.8%로 증가했다. 상위권은 줄고 하위권은 늘었다.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전체적으로 약해지는 동시에 학생 사이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한 차례의 국제평가 결과만으로 한국 교육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한국 학생들의 읽기 성취도는 여전히 OECD 평균을 웃돈다. 수학과 과학에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단순한 점수 변동으로 넘기기도 어렵다. 읽기는 국어 교과의 한 영역이 아니라 모든 학습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글자를 읽는 능력’이 아니라 ‘의미를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PISA가 평가하는 읽기 능력은 단순히 글자를 빠르게 읽고 내용을 기억하는 능력이 아니다. 여러 자료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글쓴이의 주장과 근거를 구분하며, 서로 다른 정보를 비교해 무엇이 신뢰할 만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읽고 생각하는 힘이다.
수학 문제를 이해하려면 문제의 조건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과학을 공부하려면 실험 결과와 설명을 연결해야 한다. 역사와 사회를 배우려면 여러 자료를 비교하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해석해야 한다. 읽기 능력이 약해지면 국어 성적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학·과학·사회 등 다른 과목의 학습능력도 함께 약해질 수 있다.
성인이 된 뒤에는 계약서와 금융상품 설명서, 정부 정책, 뉴스와 통계를 이해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읽기 능력의 하락은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취업과 소득, 사회적 의사결정, 민주주의의 질과 국가의 경쟁력까지 연결되는 문제다.
스마트폰이 원인인가…문제는 ‘읽기의 방식’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스마트폰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디지털 기기 자체가 읽기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통해 책과 기사, 다양한 학습자료를 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하는 정보의 방식이다.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제목, 몇 줄로 압축된 요약 정보에 익숙해지면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논리를 파악하는 경험이 줄어들 수 있다. 화면을 빠르게 넘기면서 핵심 단어만 찾는 읽기와 한 편의 글을 끝까지 읽으며 주장과 근거를 연결하는 읽기는 다르다.
학생들이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짧게 보고 빠르게 반응하는 읽기에 익숙해지고, 오래 머물며 생각하는 읽기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에 가깝다.
학교 수업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험에 나올 부분을 표시하고 정답을 빠르게 찾는 훈련은 많이 하지만, 한 권의 책이나 긴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독서활동마저 학교생활기록부와 수행평가를 위한 과제로 바뀌면 학생에게 책은 생각의 도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시험 준비가 된다. 읽기를 평가의 대상으로만 만들면서 정작 읽는 즐거움과 긴 호흡의 사고를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평균의 하락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읽기 격차’다
이번 결과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하위권 학생이 늘었다는 점이다. 읽기 능력은 가정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어릴 때부터 책을 쉽게 접하고 부모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학생은 자연스럽게 어휘력과 배경지식을 쌓는다. 반면 가정에 책이 부족하거나 부모가 독서를 도와줄 시간적 여유가 없는 학생은 학교 밖에서 읽기 경험을 쌓기 어렵다.
사교육으로도 차이가 벌어진다. 논술·독서·토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에는 단순한 문제풀이 능력을 넘어 정보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에서 격차가 생길 수 있다.
읽기가 약한 학생은 다른 과목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니 학습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결국 읽기 격차는 학습격차, 진학격차, 취업과 소득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읽기 교육은 개인의 노력이나 가정의 책임에만 맡길 수 없다. 학교가 학생의 배경과 관계없이 일정 수준의 읽기 능력을 갖추게 하는 공공적 역할을 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읽기가 덜 중요해질까
생성형 AI가 글을 요약하고 질문에 답해주는 시대가 되면서 긴 글을 직접 읽는 능력이 앞으로도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AI가 발전할수록 읽기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AI가 내놓은 답이 사실인지, 근거가 충분한지, 편향되거나 과장된 내용은 없는지 판단하려면 사용자가 먼저 질문과 답변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읽기 능력이 부족하면 AI의 답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믿고 따르게 될 위험이 있다.
가짜뉴스와 조작된 이미지, 짧게 편집된 영상이 넘쳐나는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출처를 비교하고 주장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어야 정보에 휘둘리지 않는다. AI 시대에 필요한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을 넘어 질문을 만들고, 정보를 비교하고, 근거를 확인하고, 자신의 판단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에게 AI 사용을 금지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가 만든 요약문과 원문을 비교하고, 잘못된 정보와 누락된 맥락을 찾아내며, 답변의 근거를 검증하게 해야 한다. AI를 대신 생각해주는 기계로 쓰게 할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읽고 판단하게 하는 학습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읽기 교육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첫째, 학교에서 실제로 읽는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독서를 학생 개인의 숙제나 권장사항으로 남겨두지 말고 정규수업 안에서 모든 학생이 일정 시간 책과 긴 글을 읽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몇 권을 읽었는지가 아니다. 한 편의 글을 끝까지 읽고 핵심 주장과 근거를 파악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경험이다.
둘째, 읽기와 말하기·토론·쓰기를 연결해야 한다. 읽은 내용을 요약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친구와 생각을 나누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고, 자신의 의견을 글로 표현하게 해야 한다. 읽기와 쓰기, 토론은 서로 분리된 능력이 아니다. 읽은 내용을 언어로 다시 구성하는 과정에서 학생은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만들게 된다.
셋째, 초등학교 단계에서 읽기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읽기 능력이 부족한 학생을 학년이 올라간 뒤 ‘공부하지 않는 학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휘력과 문장 이해, 배경지식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진단하고 소규모 보충수업과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기초문해력 지원은 뒤처진 학생을 별도로 분리하는 낙인정책이 아니라 학습격차가 고착되기 전에 개입하는 교육안전망이어야 한다.
넷째, 학교도서관과 지역도서관을 교육 인프라로 봐야 한다. 책을 구입해 진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에게 적절한 책을 권하고 수업과 독서를 연결할 사서교사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지역별·학교별 독서환경 격차가 가정의 소득 격차와 결합하지 않도록 공공도서관과 돌봄교실, 지역아동센터의 독서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 교육정책의 평가기준을 바꿔야 한다. 대학 진학률과 시험 평균점수만 볼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긴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지, 정보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중요한 교육성과로 관리해야 한다.
ISSUE길의 판단 — 읽기는 교육 전체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빠르게 정답을 찾는 학생을 길러내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AI는 정답처럼 보이는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수많은 정보와 주장이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쏟아진다. 이런 시대에는 정보를 많이 기억하는 것보다 무엇이 사실인지 판단하고, 다른 의견을 이해하며, 자신의 생각을 근거 있게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 출발점이 읽기다.
읽기 능력의 하락을 학생들이 책을 싫어해서 생긴 개인적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 짧고 빠른 정보에 맞춰진 디지털 환경,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 가정과 지역에 따른 독서환경의 격차가 함께 만든 구조적 문제다.
해법도 ‘책을 많이 읽자’는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 안에서 긴 글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고, 읽기와 토론·쓰기를 연결하며,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지원하고, AI가 제공한 정보까지 검증하는 새로운 문해력 교육이 필요하다.
PISA 점수 14점 하락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학생들이 읽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사회다. 읽지 않으면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구호로 판단하기 쉬워진다. 가짜뉴스와 선동에 대응하는 힘도 약해진다.
그래서 읽기 교육은 국어교육만의 과제가 아니다. 교육격차를 줄이는 정책이며, AI 시대의 인재정책이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회적 기반이다. 한국 교육이 지금 되찾아야 할 것은 더 많은 문제를 더 빨리 푸는 능력이 아니다. 한 편의 글을 끝까지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언어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