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집중조명 · 대법관 인사와 헌정 책임
대법관 인사 충돌, 끝내 합의하지 못하면 누가 결정해야 하나
발생 배경 — 대선 개입 논란에서 시작된 불신
이번 대법관 인사 갈등은 조희대 대법원장과 이재명 정부 사이에 이미 쌓여 있던 불신과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대법원은 당시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심리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여권에서는 판결의 시점과 이례적인 처리 속도를 들어 사법부가 사실상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것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번에 강조하는 ‘사법부 독립’ 역시 당시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과 완전히 분리해서 평가하기 어렵다.
반대쪽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고 사법부가 판단을 미뤄야 하는 것은 아니며, 판결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만으로 정치개입으로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다고 반박한다.
당시 판결을 정치개입으로 단정할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형성된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의 불신이 이번 대법관 인사 충돌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쟁점 1 — 209일 동안 비워두다가 왜 지금, 왜 서면으로 제청했나
이번 갈등을 직접 촉발한 것은 제청 과정이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군이 압축됐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은 209일 동안 후임자를 제청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법관 공석이 장기간 이어졌다.
그동안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에는 후보자를 둘러싼 물밑 조율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이후 이흥구 대법관 후임 인선까지 겹치자 조 대법원장은 손봉기·김성수 후보자를 한꺼번에, 대통령을 직접 만나 제청하던 기존 관행과 달리 서면으로 제청했다.
여권에서 문제 삼는 핵심은 서면 제청 자체가 아니다. 6개월 넘게 제청하지 않던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후보자 조율이 결렬된 뒤 갑자기 독자적으로 제청한 것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압박하는 행동 아니냐는 것이다. 대선 당시부터 이어져 온 갈등까지 고려하면 더욱 정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반대쪽의 논리도 분명하다. 대통령과의 협의는 필요하지만 합의까지 제청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동의해야만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할 수 있다면 대법원장의 헌법상 제청권은 사실상 대통령의 사전승인을 받는 권한으로 바뀐다.
따라서 서면 제청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다만 왜 209일 동안 제청하지 않았는지, 청와대와 어떤 이견이 있었으며 왜 이 시점에 두 사람을 서면으로 제청했는지는 조 대법원장이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쟁점 2 — 제청권과 임명권이 충돌하면 결국 누가 결정해야 하나
이번 논쟁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헌법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요구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계속 거부한다면 사실상 대통령이 대법관을 선택하게 되고 사법부 독립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대법원장이 고른 후보자를 대통령이 무조건 임명해야 한다면 헌법이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부여한 의미가 없다고 반박한다. 대통령과 국회 역시 국민의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헌법기관이라는 것이다.
양쪽 모두 충분한 논리가 있다.
문제는 대법관 후보자를 둘러싼 평가가 정치적·이념적 성향에 따라 크게 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를 후보자로 내놓더라도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반드시 합의해야 한다는 것을 해법으로 삼으면 정치적 대립이 심할수록 인선이 장기화되고 대법관 공석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제도가 답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충분히 협의했는데도 합의하지 못한다면 누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인가.
결론 — 합의가 안 되면 누가 결정할 것인가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사법부 독립을 위해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를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면 대통령의 임명권은 사실상 형식적인 권한이 된다.
대법관 후보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평가가 첨예하게 갈리는 현실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완전한 합의를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은 아니다.
따라서 충분한 협의에도 합의하지 못한다면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국민이 선출한 권력의 판단에 최종적인 무게를 두는 방향이 타당하다.
대신 조건은 분명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제청의 이유를, 대통령은 임명 또는 거부의 이유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책임져야 한다.
앞으로 대법관이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나는 만큼 같은 갈등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매번의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누가 결정하고, 어떻게 국민에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