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집중조명 · 북미대화·한반도 외교·한국의 선택
트럼프는 왜 다시 김정은을 찾나
사진 공개가 아니라 정상외교 재가동의 과정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김정은과의 과거 정상회담 사진을 잇달아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미연합훈련의 미군 참여를 대폭 축소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북한에 대한 적대감 완화와 연결했다. 이어 올해 안에 김정은을 다시 만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따라서 최근의 움직임을 ‘김정은 사진을 다시 올렸다’는 단신으로 볼 필요는 없다. 트럼프가 북미 정상외교를 다시 가동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왜 지금이냐는 것이다.
왜 지금 김정은인가—이란에서 막힌 트럼프 외교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이란이다.
거의 6개월째 계속되는 이란 전쟁은 트럼프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다. 군사적 우위를 보여주고 있지만 전쟁을 결정적으로 끝내지 못하고 있고, 장기화할수록 에너지 가격과 물가, 재정 부담까지 미국 국내정치로 돌아온다.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다. 이란에서 빠른 승리를 만들기 어렵다면 북한에서 다른 종류의 성과를 만드는 것은 매력적인 선택이다.
특히 북한은 트럼프에게 독특한 외교무대다. 군사작전을 하지 않고도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하나만으로 세계적인 정치 이벤트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한 ‘이란전쟁 시선 돌리기’라고 단정하는 것은 과도하지만, 이란에서 꼬인 외교를 한반도에서 돌파하려는 정치적 유인이 커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간선거와 ‘트럼프만 할 수 있는 외교’
두 번째는 미국 국내정치다.
김정은과의 정상외교는 다른 외교정책과 달리 트럼프가 거의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정치적 브랜드다.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판문점 회동은 정책적 성과와 별개로 ‘적과도 직접 만나 거래하는 대통령’이라는 트럼프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트럼프가 하노이 실패보다 싱가포르와 판문점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실패한 비핵화 협상보다 자신이 만들어냈던 극적인 정상외교를 다시 정치적 자산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핵실험·ICBM 시험 중단이나 군사적 긴장 완화 정도만 얻어내도 트럼프는 이를 상당한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도 움직일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에 한국의 변화도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이 직접 만나 장기간 계속된 전쟁을 끝내는 문제를 논의하고, 그 과정에서 북한 핵능력의 추가적인 고도화를 중단시키는 현실적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밝힌 체제 존중·흡수통일 불추구·적대행위 불추구에서 한 걸음 더 나간 제안이다.
트럼프에게는 움직이기 좋은 환경이다. 한국 정부가 북미대화에 반대하기보다 대화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한미훈련 축소 조치에 대해서도 대화 여건을 만들려는 의지라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한미 양국이 사전에 짜놓은 공동 시나리오라고 볼 근거는 아직 없다. 다만 서울과 워싱턴이 ‘압박보다 대화를 통해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방향에서는 상당히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는 ‘비핵화’보다 ‘핵동결’이 먼저일 수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 무엇을 얻으려는지도 달라질 수 있다.
2019년 하노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한꺼번에 거래하려다 실패했다. 지금 북한은 그때보다 핵능력이 강해졌고 러시아·중국과의 관계도 깊어졌다. 김정은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자체를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2018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이번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큰 거래보다 핵실험·ICBM 중단, 핵물질 생산 동결 등 작은 거래부터 시작할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도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김여정은 미국의 적대정책이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도 트럼프와 김정은의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훌륭하다’고 했다. 미국의 태도가 더 변한다면 협상할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에는 기회인 동시에 위험이다
북미대화가 시작되면 한국에는 분명 기회다.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남북대화를 복원할 공간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도 생긴다.
트럼프가 외교적 성과를 서두르면서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보다 핵동결과 ICBM 위협 감소 정도에서 타협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ICBM은 묶었지만 한국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기와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은 그대로 남는 합의가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단순한 ‘북미 중재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북미협상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무엇을 교환할 것인지 처음부터 미국과 함께 설계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정상회담 성사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거래하느냐’다
트럼프가 다시 김정은을 찾는 데는 여러 계산이 겹쳐 있다.
이란에서 풀리지 않는 외교적 부담, 중간선거를 앞둔 성과의 필요, 자신만의 정상외교를 다시 살리려는 정치적 계산, 그리고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달라진 한반도 환경이다.
그래서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날까’가 아니다.
2019년 하노이와 달리 트럼프는 무엇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고, 김정은은 무엇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거래에서 한국의 안보는 어디에 놓이는가.
최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북미대화를 판단할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상회담이라는 장면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