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집중이슈 · 외국인 아동·출생등록·헌법재판소
‘그림자 아동’ 없애라—헌재가 인정한 보편적 출생등록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법에는 없는 아이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한국의 출생등록 제도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가 외국 국적이거나 체류자격이 불안정하면 현행 가족관계등록법만으로는 출생 사실을 국가의 공적 장부에 남기기 어렵다.
출생이 기록되지 않으면 의료·보육·교육과 사회보장에 접근할 때마다 아이의 존재를 다시 증명해야 한다. 학대나 유기, 인신매매와 범죄 피해가 발생해도 국가가 아이를 발견하고 추적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들을 ‘그림자 아동’이라고 부른다.
헌재가 인정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존재를 기록할 권리’다
헌법재판소는 8월 27일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에게 출생등록 방법을 마련하지 않은 입법부작위가 위헌이라고 전원일치로 결정했다.
핵심은 출생등록이 특정 국적의 국민만 누리는 행정서비스가 아니라 모든 아동이 태어난 즉시 자신의 존재와 신분관계를 공적으로 확인받을 기본권이라는 판단이다.
헌재가 법률 조항 자체가 아니라 국회가 필요한 법을 만들지 않은 상태를 위헌으로 확인한 ‘진정입법부작위’ 결정은 헌재 역사상 두 번째이자 약 32년 만이다. 그만큼 국회에 부과한 입법의무가 무겁다.
출생등록은 국적이나 체류자격 부여가 아니다
반대나 우려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은 출생등록이 불법체류를 인정하거나 대한민국 국적을 자동으로 주는 제도로 오해될 가능성이다.
그러나 출생 사실을 등록하는 것과 국적·체류자격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출생등록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의 자녀로 태어났는지를 기록하는 절차이고, 국적 취득과 체류 허가는 각각 국적법과 출입국 법제에 따라 별도로 판단할 수 있다.
아이의 존재를 기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민정책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관리해야 할 것은 부모의 체류 문제와 별개로 아동의 생명·안전·교육받을 권리다.
부모가 단속을 두려워하면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법에 신고절차만 새로 만든다고 모든 아이가 등록되는 것은 아니다. 미등록·불안정 체류 상태의 부모가 출생을 신고하는 순간 정보가 출입국 단속에 곧바로 활용될 수 있다고 두려워하면 신고를 피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출생등록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와 출입국 행정에 이용되는 정보를 구분해야 한다. 아동 보호를 위한 등록정보가 부모 단속의 통로로 작동하지 않도록 정보 이용 목적과 기관 간 공유 범위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병원이 알리고 국가가 확인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부모의 신고에만 의존하면 가정의 사정이나 두려움 때문에 다시 누락이 생길 수 있다.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행정기관에 통보하고, 국가는 부모의 국적과 체류상태와 무관하게 아동별 출생기록을 만드는 보편적 출생통보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병원 밖 출산과 의료기관 이용이 어려운 가정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조산사·지방자치단체·아동보호기관을 통한 보완 신고와 사실확인 절차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출생기록의 오류를 바로잡을 절차, 부모가 확인되지 않는 아동의 임시 등록, 개인정보 보호와 열람권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국회가 다시 미루면 권리침해는 계속된다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국회에서 법안으로 제안됐지만 제도화되지 못했다. 이민과 국적 논쟁이 결합하면서 아동의 권리 문제가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국회가 입법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권고가 아니라 헌법상 의무를 이행하라는 요구다. 국회는 출생등록의 대상과 절차, 의료기관 통보, 개인정보 이용 제한, 국적·체류제도와의 관계를 하나의 법률체계로 정리해야 한다.
결론—국가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아이의 존재다
출생등록은 이민정책을 완화하느냐 강화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의료와 교육,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존재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부모의 국적과 체류자격은 별도의 법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 그 판단 때문에 아이의 출생 자체를 공적 기록에서 지우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
국가가 아이에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자격이 아니라, 그 아이가 태어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