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2 · 파병 찬반·트럼프 변수·전략적 선택
호르무즈 파병, 기회의 비용인가 끌려가는 시작인가
파병 찬반보다 더 큰 질문
호르무즈 파병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단순하지 않다. 찬성론은 한국의 해상교통로와 한미동맹의 책임을 강조한다. 반대론은 전쟁 개입과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논쟁은 훨씬 큰 문제로 이어진다. 트럼프 시대를 한국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창’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계속되는 요구에 한국이 끌려가는 시작으로 볼 것인가.
찬성론 ① 우리가 이용하는 바닷길, 우리도 책임져야 한다
호르무즈해협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에너지와 상품이 통과하는 핵심적인 국제 해상교통로다. 호르무즈의 안정으로 한국도 직접적인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한국이 자유항행의 혜택은 누리면서 위험과 비용은 미국과 유럽 국가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라도 일정한 국제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찬성론 ② 한미동맹에도 책임분담이 필요하다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제안보 문제에서 동맹국의 역할을 요구할 때 한국 역시 일정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미국의 동맹정책이 동맹국에 더 많은 역할과 비용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면서 미국이 중시하는 국제안보 현안에서는 계속 거리를 둘 경우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의 신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찬성론 ③ 트럼프가 있는 지금 한반도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찬성론에는 보다 적극적인 ‘기회론’도 존재한다. 한국에는 북미 정상회담 재개와 전작권 전환이라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있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은 일반적인 외교협상과 다르다. 미국 대통령과 북한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이 결정적인 변수다.
트럼프 이후의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직접 담판에 나설지는 알 수 없다. 전작권 전환 역시 차기 미국 행정부에서 지금보다 쉬워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지금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북미대화를 재개하며 전작권 문제까지 진전시킬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일 수 있다. 호르무즈에서 한국이 일정한 책임을 부담하고 이를 한미 간 신뢰를 축적하는 계기로 삼아, 북미대화와 전작권 같은 보다 중요한 국가적 목표를 진전시키는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이다.
반대론 ① 비전투 파병도 전쟁에 연루될 수 있다
파견 목적을 선박 호위나 기뢰 제거 등으로 제한하더라도 군함과 장병이 실제 분쟁지역에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우발적인 교전이 발생하거나 한국군이 공격받는 순간 비전투와 전투의 경계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이란이 한국을 미국의 군사행동에 참여하는 국가로 인식하게 되면 한국 선박과 기업, 국민의 안전 문제로까지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반대론 ② 한미동맹과 미국의 모든 군사행동 참여는 다르다
한미동맹의 기본적인 목적은 한반도의 평화와 방위다.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수행하는 군사작전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당연한 의무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국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이란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국제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움직인다면 한국이 독자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이 점차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론 ③ 이번에 들어주면 트럼프의 요구는 끝나는가
반대론이 제기하는 보다 장기적인 문제는 트럼프의 협상 방식이다. 한국이 이번에 호르무즈 파병 요구에 응한다고 해서 미국의 요구가 여기서 끝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늘은 호르무즈지만 다음에는 우크라이나 지원일 수 있다. 이후에는 방위비,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 대중국 정책 등에서 더 큰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특히 거래와 압박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외교 방식에서는 하나의 요구를 수용했다고 다음 요구가 줄어든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하나를 양보하면서 다른 분야의 협력을 기대하는 방식이 반복될 경우 한국이 원하는 것을 얻기보다 미국의 새로운 요구에 계속 대응해야 하는 구조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반대론의 우려다.
같은 트럼프, 서로 다른 미래
결국 찬성론과 반대론은 트럼프라는 같은 인물을 전혀 다르게 바라본다. 찬성론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큰 결단을 할 수 있는 트럼프가 있을 때 북미 정상회담과 전작권 같은 어려운 문제를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
반대론은 바로 그 예측 불가능성과 거래적 성격 때문에 한번 요구에 응하기 시작하면 더 큰 요구가 이어지고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호르무즈 파병 논쟁은 그래서 단순한 파병 찬반을 넘어선다. 트럼프 시대를 활용할 것인가, 경계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 외교의 자율성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가 보다 장기적인 쟁점이다.
영국·프랑스는 군함을 보내고도 왜 전쟁에는 들어가지 않나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참전의 선을 스스로 정하는 유럽 동맹국의 선택에서 한국의 전략적 공간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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