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이슈 3 · 2026년 9월 29일 집중이슈
젤렌스키는 왜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공개했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던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으로 이송했다고 전격 공개하면서 한·우크라이나 관계에 예상치 못한 파장이 일고 있다.
한국 정부는 포로 본인과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전, 한반도 정세 등을 고려해 이송 사실을 공개하지 않기로 우크라이나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표에 강한 유감을 표시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측이 비공개 합의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자 공식적인 설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를 초치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측은 비공개 합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양국 사이에 어떤 수준의 비공개 합의가 있었는지를 제3자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질문은 따로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왜 굳이 유엔총회라는 국제무대에서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공개했을까.
첫 번째 가능성 | 북한군 참전을 다시 국제사회의 중심 의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북한군 포로 2명은 단순한 전쟁포로가 아니다.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실제 병력을 보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포로 이송 사실을 언급하면서 북한군 병사들이 생포를 피하도록 훈련받았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전쟁을 단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아니라 북한까지 직접 참여한 국제적인 안보 문제로 부각하는 것이 서방의 관심과 지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AP통신도 이번 공개의 배경과 관련해 북한의 참전을 국제사회에 다시 부각하려는 목적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후 발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28일 북한군 8천 명 이상이 러시아에 있으며 추가로 1만 명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한국에 우크라이나의 방공능력 강화를 지원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북한군 문제와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하나의 논리로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가능성 |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 압박인가
여기에서 두 번째 질문이 나온다.
젤렌스키가 북한군 포로 문제를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를 끌어내는 카드로 활용하려 한 것은 아닐까.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한국에 방공체계를 비롯한 군사적 지원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인도적·재정적 지원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직접적인 무기 제공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FT도 이번 갈등을 보도하면서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미국산 미사일 등을 포함한 군사적 지원을 요청해왔지만 한국이 직접적인 무기지원에는 선을 그어왔다는 점을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은 젤렌스키에게 상당히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논리는 단순하다.
‘북한은 러시아에 군대를 보내 우크라이나와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직접적인 안보 위협을 받는 한국은 왜 우크라이나 지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가.’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군 추가 파병 가능성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방공 지원 확대를 함께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포로 이송 사실을 공개한 직접적인 목적이었다고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공개가 북한군 참전 문제와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를 하나의 의제로 연결하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 번째 가능성 | 외교적 계산보다 ‘보여주는 정치’가 앞섰나
더 단순한 설명도 가능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메시지와 상징적인 장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행 역시 북한의 러시아전쟁 참여를 국제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소재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공개 방식을 둘러싼 의견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 우크라이나 대사의 언론보좌관은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 방식을 비판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보좌관은 그런 합의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한국과 우크라이나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 비공개 합의의 실체를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양국이 포로들의 한국행 문제를 협의해왔고, 한국 정부가 포로 본인과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전을 중요하게 고려했다는 점은 확인된다. 포로 2명은 현재 한국 관계기관의 보호 아래 조사를 받고 있으며 향후 보호·정착 절차 등이 검토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가 민감하게 관리해온 사안을 상대국 정상이 국제무대에서 먼저 공개한 것은 양국 간 외교적 신뢰라는 측면에서도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젤렌스키는 왜 한국과의 마찰까지 감수했을까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기에 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한국은 결코 가볍게 대할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인도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왔고, 우크라이나는 앞으로도 한국의 방산·방공 분야 지원 확대를 원하고 있다.
FT는 이번 공개를 둘러싼 갈등이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에 공동 대응할 이해관계가 있는 한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개를 선택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 그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후 행동까지 연결해서 보면 몇 가지 가능성은 생각해볼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공개한 뒤에도 북한의 추가 파병 가능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요구와 연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공개를 단순한 말실수나 외교적 결례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북한군의 러시아전쟁 참전을 국제사회에 다시 부각하고, 동시에 한국에 보다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을 요구하려는 외교적 계산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한국의 안보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국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고려됐느냐다.
한국 입장에서 북한군 포로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일부만이 아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안전, 향후 탈북 의사를 밝히는 북한군의 신변보호,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까지 연결된 매우 민감한 문제다.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와 싸우는 전쟁의 문제이지만 한국에는 한반도 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갈등이 던지는 질문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비공개 약속을 지켰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자신의 전쟁을 돕도록 다른 나라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 나라의 안보와 외교적 이해관계는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
한국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지원의 범위와 원칙, 북한군 문제를 둘러싼 양국 협력의 조건을 보다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가 치밀하게 계산된 외교전략이었는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메시지 정치가 앞선 것이었는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지고 있다.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행을 둘러싼 문제는 이제 두 사람의 신변 문제를 넘어,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서로의 국익과 안보적 이해관계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외교 문제로 바뀌었다.